매년 방학이 된 시점에 젊은이들이 보여주는 현상이 있다. 유행을 추구하는 다수파의 게임을 집중 플레이하며 시간을 보낸다. 게임연예는 일은 주류에 편입되기 위한 필수적 화제이다. 누구나에게 치졸한 자화상으로 남아 있는 <리그 오브 레젠즈>의 인기는 이제 시들하다. 개발사의 허울을 뒤집어 썼던 <오버워치>가 그 진가를 어쩔 수 없이 드러내며 이제는 <배틀그라운즈>가 열풍을 몰고 있다고 한다.


나의 뛰어난 게임은 플레이어의 규모나 인지도와 관련되지 않는다. <페이퍼스 플리즈>도 <케쓰이>도 <플로레알>도 구로 한복판에서 그 누구를 붙들고 물어봐도 알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일반은 듣도 보지도 못한 저런 게임을 마니아나 평론가가 바라보는 시각은 사뭇 다르다. 정연한 표현과 겸비되는 전문가의 시각을 무시할 수는 없다. 우리나라의 잘 나가는 게임을 그들이 철저히 외면하는 것은 더욱 무시할 수 없는 현실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예전부터 모바일 게임이 화제다. 어떤 업체도 참여하여 대량의 타이틀을 생산해 내고 있다고 한다. 카드 수집이라는 일본 유래의 구상과 밸런싱만 숙지하면 개발비 회수는 당상이다. 무엇보다도 '생산'이라는 표현이 잘 조화되는 것은 끊임없이 표절되는 인게임적 요소와 그로 인한 노동집약적 개발 과정 덕분이다. 나부랭이 게임은 게이머의 주체성을 제물로 성립된다. 그 플레이 양상은 끝나지 않는 일상의 양상을 답습함으로써 현실과 게임의 경계를 모호하게 한다. 게임을 도박과 마약으로 규정하려는 시도는 그 대상은 불분명하지만 명쾌한 통찰이 담겨 있다.


당대의 비슷한 현상을 꼽는다면 공시 열풍을 예로 들겠다. 공무원 지망생만 있는 나라에는 돈을 내어주지 않겠다는 투자자의 발언은 냉철하다. 시도의 여건이 마련된 상황에서 일률적인 길을 걷겠다는 모습은 안이한 일상에 헌신하기 좋아하는 베짱이를 연상시킨다. 모바일 게임은 결과적으로 공시생의 길을 간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 맥락에서는 <배틀그라운즈>도 마찬가지이다. 알량한 구상이지만 국산 게임이라는 탈을 쓰고 수많은 사람의 헹가래를 받고 있다.


이번 방학 동안 친구의 귀띔으로 알게 된 <타르코프>는 일견 <배틀그라운즈>나 <더 디비전> 같은 캐주얼 오픈월드 총싸움을 연상시켰다. 그러나 내면에는 예스러운 엄격함이 있었다. 복잡하고 불편한 조작계와 제한된 시야는 육체적 한계를 대변하며, 적탄에 대한 두려움은 조금의 움직임에도 게이머가 신중하도록 한다. 어떠한 방법으로도 적의 위치를 인지할 방법이 없다는 점은 죽음으로써 자신을 살해한 자가 누군지 알 수 없게 되는 현실의 총싸움을 반영하고 있다.


또 다른 것은 친구의 스팀 라이브러리 한 구석에 있던 <써티 플라이츠>라는 게임이다. 1인 제작 게임으로 퀘이크 2 엔진에 투박한 음악과 비주얼이 인상적이지만 짧은 플레이타임에 비해 비싼 가격이 조롱거리로 여겨지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어리석은 착각이었다. 게임을 플레이하며 스스로 느낀 것은 전율이었다. 인게임의 연출과 합치된 이야기는 상징적이지만 장황하지 않았다. 게이머의 개입을 거부하는 플롯이 자연스러운 경우는 드물다는 점에서 여러 번 언급되어야 할 작품으로 여겨졌다.


주류에의 영합은 안락함과 금전적 이득을 준다. 금융자본주의 사회에서 안정과 돈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삶에서 결국의 목표가 되지는 못한다. <타르코프>나 <써티 플라이츠>처럼 고도의 주제의식에 도전하는 작품 없이 우리나라 게임이 사행성 노동에 불과하다는 묘사를 벗어날 가망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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